# 본 내용은 참고 용도로만 활용하시되, 정확한 정보는 관련 기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은행
경제생활과 전략적 상황
전략적 상황이란 어떤 사람이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즉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상대방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라는 예측 아래에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선택의 대안이 여러 가지 있고 이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도 여러 가지가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짝 짓느냐에 따라 수없이 많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전략적 상황에 있는 경제주체는 가능한 결과들을 모두 고려하고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가격을 낮추려 할 때는 경쟁기업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 지 미리 예측하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경쟁기업이 예전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 판매량 증가로 이어져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쪽에서도 함께 가격을 낮춘다면 아무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쟁기업이 더 큰 폭으로 가격을 낮출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공연히 벌집만 건드린 상황이 됩니다. 상대 기업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예측하고 그래도 가격을 낮추는 것이 이득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담합이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 지속되는 이유
‘용의자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이론은 뉴스나 신문 기사에도 가끔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전략적 상황 중의 하나입니다. 이 게임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자못 흥미를 자아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여러 경제문제가 이 게임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어 그 분석결과의 활용범위가 무척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 두 사람이 각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취한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 모두에게 바람직하지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
어떤 범죄를 함께 저질렀으리라고 생각되는 두 용의자가 검거되어 검사의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는 두 사람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그들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함께 심문하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아 범행을 부인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따로 떼어놓아 독방에 가둔 다음 한 사람씩 불러 심문을 진행시킵니다. 심문할 때 검사는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각 용의자에게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그 범죄를 저질렀다는 강한 심증을 갖고 있고, 어차피 진상은 밝혀질 테니 순순히 자백하는 것이 좋을 거요. 당신 친구가 순순히 자백했는데 당신은 범행을 부인하고 끝내 버틴다면 당신에게 법정 최고형인 15년을 구형하겠소. 그 대신 당신의 친구는 수사에 협조한 공을 인정해 방면해 주려고 하오. 반면에 당신의 친구가 범행을 부인하고 버티는데 당신이 자백한다면 그는 15년형, 당신은 방면이오. 당신들이 죄를 뉘우치고 둘 다 자백한다면 법정 최저형인 5년을 구형하게 될 것이오. 만약 두 사람 모두 부인하고 버틴다면 이번 일로 벌을 줄 수 없겠지만, 얼마 전에 당신들이 저지른 게 분명한 범죄를 다시 수사해 1년형을 받도록 만들겠소.”이와 같은 검사의 제의를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김씨의 입장이 되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그의 머리 속에는“우리 둘 다 범행을 부인하고 버틸 수 있으면 좋을텐데, 박씨도 같은 생각일 테니 한번 버텨볼까?”라는 생각이 얼핏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박씨가 자기만 살자고 자백을 해버린다면 자신은 15년형을 받는 끔찍한 처지가 됩니다. 아예 자백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둘 다 자백하면 5년형을 받을 테니, 둘 다 부인함으로써 1년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지금 김씨와 박씨는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처지에 빠져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각자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우선 박씨가 자백했다고 가정하고, 이 경우 김씨의 입장에 서서 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봅시다. 박씨가 자백했는데 김씨가 부인하고 버틴다면 15년형을 받게 되므로 함께 자백해 5년형을 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따라서 박씨가 자백했다면 김씨에게도 자백하는 것이 더욱 유리한 전략이 됩니다. 이번에는 박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버틴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에도 역시 김씨로 보아서는 자백하는 쪽이 더욱 유리합니다. 부인하면 1년형을 받게 되는데 자백하면 방면되는 행운을 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박씨가 어떤 전략을 선택하건 간에 김씨로 보아서는 언제나 자백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박씨의 입장에서 볼 때도 역시 자백하는 것이 언제나 유리합니다. 김씨가 어떤 전략을 선택하든 박씨로 보아서는 자백하는 쪽이 더 유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이 카르텔에 속해 있는 기업은 카르텔협정을 준수하는 전략과 위반하는 전략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카르텔협정을 위반한다는 것은 혼자만 몰래 가격을 낮추어 손님을 끌려는 행동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카르텔을 둘러싼 상황이 바로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기업들은 협정을 준수하는데 자신만 위반하면 이윤이 매우 커지고 상대방의 이윤은 아주 작아진다거나, 모두 위반할 때에 비해 모두 준수할 때의 이윤이 더 크다는 점 등에서 용의자 딜레마 게임의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기업(A社와 B社)이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기업이 어떤 전략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다음의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합시다. 이 표에 나와 있는 괄호 안의 숫자들은 각 기업의 이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카르텔협정을 위반하는 것이 유리한 전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기업이 모두 유리한 전략을 채택하게 되면 머지않아 카르텔 자체가 와해될 것입니다. 이처럼‘용의자 딜레마’라는 게임의 틀을 빌어 카르텔이 지속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담합이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도 반복해서 행해지면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담합이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계속해서 영업을 해야 하므로 담합에 속한 기업들은 한 번에 끝나는 게임이 아닌 일종의 반복 게임*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카르텔협정을 위반해 일시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곧 상대 기업의 보복을 받아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각 기업이 카르텔협정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태도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반복 게임: 용의자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여 진행한 후 각 게임의 이득을 더하여 전체게임의 이득으로 삼는 게임
가격파괴의 허실
외국 유명브랜드의 자동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서너 개의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자동차 가격을 내리는 바람에 지난 한 해만도 가격이 전년도에 비해 10%나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치열한 싸움의 와중에서 A회사가 주요 일간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어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다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자동차에 관한 한 저희 회사는 어느 경쟁회사보다 더 싼 가격에 여러분을 모실 자신이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차를 사신 후 다른 회사가 더 싼값에 파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 회사의 가격이 적혀있는 광고지를 저희들에게 가져오시면 그 차액의 두 배를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이 광고 문안을 보면 엄청난 가격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예를 들어 A회사가 이 자동차에 5,000만 원의 가격을 붙였다고 합시다. 이것을 보고 경쟁회사인 B회사가 4,800만 원의 가격표를 붙인다면 고객들이 모두 그리로 몰릴까요?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B회사를 찾지 않고 A회사에서 차를 구입할
것입니다. 일단 A회사에서 5,000만 원에 구입한 다음 B회사의 광고지를 보여주고 차액의 두 배인 400만 원을 환불받으면 4,600만 원에 구입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고객들은 A회사로 몰릴 것이고 B회사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경쟁회사라 할지라도 5,000만 원보다 낮은 가격표를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A회사는 이 전략을 통해 경쟁회사로 하여금 자신이 정한 가격을 그대로 따라오게끔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A회사는 이윤이 충분히 날 수 있는 수준에서 가격을 정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 시장 안의 모든 기업들은 똑같은 가격에 수입차를 판매하여 짭짤한 이윤을 얻게 됩니다. 가격파괴의 절정같이 보이던 광고가 사실은 서로 협조하여 잘 해보자는 암묵적 담합의 초대장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전략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런 광고를 낸다면 즉각 공정거래당국의 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발한 전략을 짜낼 수 있었던 기업가의 아이디어만은 칭찬할 만합니다.
# 위 내용 중 수정 및 보완할 부분이 있으신 경우 이메일이나 댓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